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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조상들의 슬기롭던 생활풍습의 자료를 수집ㆍ보존하여 역사연구와 학술자료로 삼기 위한 민속박물관 설립의
필요성을 통감한 계몽사(啓蒙社) 회장 김원대(金源大)의 출연(出捐)으로 재단법인 계몽문화재단에 의하여 설립되었습니다.
1975년 온양민속박물관 설립추진위원회가 조직되어 이듬해 공사에 착수, 1978년 10월 25일에 개관한 온양민속박물관은 대지 2만 5,000평, 건평 3,300평의 제1ㆍ2ㆍ3ㆍ4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 전시실에는 한국인의 일생 및 의ㆍ식ㆍ주, 제2 전시실은 생업(生業), 제3 전시실은 민속공예ㆍ민간신앙과 오락ㆍ학술과 제도, 제4 전시실은 특별전시실로 민화실과 불교 회화실ㆍ퇴호 유물실로 되어 있으며, 총 1만 7000여 점의 민속자료가 소장ㆍ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야외전시장에는 석조미술품과 토속가옥ㆍ방앗간ㆍ정자ㆍ장승 등의 도설 《한국의 민속》, 《민속도록》, 《한국의 벼루》 등이 있고, 시청각 자료로 슬라이드 필름도 있습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權谷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155호. 1706년(숙종 32) 지방 유생들이 조정에 건의하여 세웠으며 이듬해 사액(賜額) ‘顯忠祠’를 받았다.
1865년(고종 2)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일시 철폐되었고, 국권피탈 이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20여년 간 향불이
끊겼다. 1932년 동아일보사가 주최가 되어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하고 다시 영정을 모셨고, 62년에는 유물전시관
이 건립되었다. 또한 66년에는 현충사의 경역을 확대, 성역화하였는데, 67년에 준공하여 경내에 본전(本殿) ·고택(古宅) ·정문
(旌門)·유물전시관 ·활터 등이 마련되었다. 69년에는 현충사 관리사무소를 설치하고 관리와 제전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도록 하
였다.
① 유물전시관 : 총 150평. 화강암 건물로 유물 ·유적의 사진, 거북선 모형, 《난중일기  (亂中日記)》 서간첩(書簡帖) 및
《임진장초(壬辰狀草)》, 장검(長劍), 무과급제 교지, 사부유서(賜符諭書), 증시교지(贈諡敎旨), 옥로(玉鷺), 도배(桃盃), 요대 (腰帶)
등과 각종 무기가 보존되어 있다.
② 충무문(忠武門) : 현충사의 정문.
③ 홍살문 : 현충사 입구에 세운 문으로서 홍문이라고도 한다.
④ 충의문 :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현충사 본전으로 인도하는 문.
⑤ 본전 : 총 62평.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한국식 청기와 철근 콘크리트 건물
⑥ 고택 : 이순신이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보낸 집. 앞에 충무정(忠武井)이 있다.
⑦ 연지(蓮池) : 현충사 경내에 새로 만들어 놓은 연못이다.
외암리 민속마을
2000년 1월 7일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은 북쪽 설화산(雪華山)을 주봉으로 그 남쪽 경사면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은 지형조건으로 주택은 거의 서남향 또는 남향이다. 마을 곳곳에 냇물이 흐르며 입지가
좋고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 북서계절풍울 막아주는 등 지형적 이점이 있어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500여 년 전에는
강씨(姜氏)와 목씨(睦氏)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정(李挺) 일가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
하면서 예안이씨(禮安李氏) 세거지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재를 배출하여 반촌(班村)의 면모를 갖추고 반가(班家)의
가옥이 생겨났다. 그 뒤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1677~1727)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뀌었다.
마을에는 조선시대 이정렬(李貞烈)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아산 외암리 참판댁(중요민속자료 195)을 비롯해 영암댁, 송화댁,
외암종가댁, 참봉댁 등의 반가와 그 주변의 초가집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데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마을은 반풍(班風)이 강하고 세시풍속도 농경사회와 비슷하며 느티나무제, 장승제 등을 지낸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어 문화적 가치가 크다.
삽교천방조제
길이 3,360m. 최대너비 168m. 높이 12∼18m.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인공담수호 (淡水湖)는 충남 당진ㆍ아산ㆍ예산ㆍ홍성의
4개 시군 22개면 지역을 전천후 농토(2만 4,700ha)로 개발하기 위하여 삽교천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1975∼1983)의
중추적 사업으로 계획된 것이다. 이 지역은 넓은 평야와 간석지 등을 포함하고 있으면 서도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한수해(旱水害)를 자주 겪어왔으며 또 하구에서 흘러드는 바닷물로 유역 일대가 염해(鹽害)와 해식(海蝕)에 시달려왔다.
이와 같은 재해의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해결ㆍ개선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저수량 8,400만t의 삽교호가 건설된 것인데,
1976년 12월 착공, 1978년 3월 최종 물막이작업에 성공하고 1979년 10월 완공하였다.
이 담수호의 조성으로 4개 시군 농토의 관개용수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조제에 부설된 배수갑문(6련 12문)의 용수조절
능력(초당 5,300t)도 기대할 만하며, 그 밖에 공업ㆍ생활 용수의 하루 4만 8000t 공급도 가능하게 되었고, 방조제 도로의 이용
으로 서울∼당진 간 육로 거리가 40km나 단축되는 간접 효과도 거두게 되었다.
아산만방조제
길이 2,564m, 저수량 225만 t에 이른다. 충청남도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에 있는 아산만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한
곳인데 아산만으로 흐르는 하천 주변은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에 많은 피해를 입혔고, 홍수 때는 물이 잘 빠지지
않아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피해를 줄이고 아산만 일대를 관광지로 이용하기 위하여 1973년에 건설하였다.
방조제가 건설된 후 생긴 아산호는 경기도 평택시에는 농업용수로, 충청남도 아산시 임해 공업단지에는 공업용수로 이용한다.
또한 교통도로로 이용하여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거리가 줄어들었다.
신정호 국민관광 단지
신정호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만들어진 담수면적 92ha의 인공호수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해서 온양온천과 함께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자 1971년 국민관광지가 되었다가 1984년 국민관광단지로 바뀌었다. 수정궁ㆍ수상각 등의 휴식처와 낚시터가 있고
호수에서 모터보트ㆍ오리배 등을 탈 수 있다. 8.45m 높이의 이순신동상이 서 있으며 잔디광장ㆍ야영장ㆍ조류사ㆍ체육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어 청소년 심신단련장이나 단체 야외모임장으로 널리 이용된다. 주변에 현충사ㆍ온양민속박물관ㆍ외암리민속 마을ㆍ온양온천ㆍ도고온천 등 관광지가 많다. 찾아가려면 장항선을 타고 온양온천역에 내려 신정호행 시내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 천안인터체인지를 나와 21번 국도를 타고 온양온천을 거쳐 온양고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신정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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